앞서 다룬 [미국 CBDC 금지법(디지털달러, 스테이블코인, GENIUS Act)] 포스팅에서 보았듯, 지니어스 법(GENIUS Act)이 통과되면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제도권 금융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구조를 처음 뜯어봤을 때,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송금 수수료도 거의 없이 1달러를 넣으면 1달러짜리 코인을 발행해 주는데, 테더(Tether)나 서클(Circle)의 연간 순이익이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수백 년간 국가가 독점해 온 '화폐 발행 특권'을 민간 기업이 조용히 가져간 거대한 금융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수익이 창출되는 구체적인 경로와, 이것이 전 세계 통화 질서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핵심만 파고들어 정리했습니다.

시이오리지: 국가만 누리던 '공짜 돈'을 민간이 가져간 방식
일반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단순한 디지털 지갑 관리자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 수익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수백 년간 국가와 중앙은행만이 독점해 온 권력을 조용히 이전받은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시이오리지(Seigniorage)입니다. 여기서 시이오리지란 화폐를 찍어내는 데 드는 비용과 그 화폐의 실제 액면가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왕실이, 근대에는 중앙은행이 독점하던 이익입니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이것을 민간 기업으로서 그대로 가져갑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고객이 100달러를 내고 100달러어치 코인을 받으면, 발행사는 그 100달러로 미국 단기 국채나 안전 자산을 매입합니다. 현재 미국 단기 국채 금리는 연 4~5% 수준입니다. 그런데 발행사는 코인 보유자에게 이자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를 '제로 금리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고객의 돈으로 이자를 버는데 그 이자는 전부 발행사가 챙기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테더의 공개 보고서를 훑어봤는데, 실제로 이 회사의 수익 대부분이 국채 이자에서 나옵니다. 직원 수는 수백 명에 불과한데 순이익은 수조 원 규모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사기업이 화폐 발행 이익을 국가 대신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날 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가 왜 합법인가
바로 여기서 지니어스 법(GENIUS Act)의 역할이 나옵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준비 자산을 100% 안전 자산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그 대신 제도권 내 합법적 발행 주체로 인정합니다. 미국 재무부가 공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구조는 민간이 달러 유통을 확대하되 미국 국채 수요까지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설계입니다(출처: 미국 재무부).
동시에 미 하원은 H.R. 1919, 즉 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를 통해 연방준비제도(Fed)가 직접 개인에게 디지털 달러(CBDC)를 발행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여기서 CBDC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원장(ledger)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디지털 법정화폐를 뜻합니다. 국가가 모든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형 화폐'라는 비판이 핵심입니다(출처: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정리하면 미국은 두 개의 트랙을 동시에 달리고 있습니다.
- 국가 발행 CBDC는 금지 — 정부의 금융 감시 도구화를 차단한다는 명분
- 민간 스테이블코인은 제도화 — 달러 유통 확대와 국채 수요 창출이라는 실리
- 그 결과 시이오리지 이익은 민간 발행사에게, 달러 패권 강화 효과는 미국 정부에게
내로우뱅크 구조가 흔드는 거시경제, 그리고 유럽의 딜레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은행과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가 직접 두 구조를 비교해봤더니 근본부터 달랐습니다. 상업은행은 예금을 받아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신용 창출(Credit Creation)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신용 창출이란 은행이 받은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로 풀어 경제 전체의 통화량을 늘리는 메커니즘을 뜻합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대출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들어온 돈만큼 100% 안전 자산으로 쌓아두기만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구조를 내로우뱅크(Narrow Bank)라고 부릅니다. 협은행이란 예금 수취 기능은 있지만 대출 기능이 없는, 즉 신용 창출이 일어나지 않는 금융 기관 형태를 말합니다. 디지털 MMF(머니마켓펀드)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겉으로 보면 대출을 안 하니 더 안전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구조를 뜯어볼수록, 이것이 오히려 기존 금융 시스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글로벌 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코인 지갑으로 이동하면
만약 개인과 기업이 은행 예금 대신 스테이블코인 지갑에 달러를 담아두기 시작하면, 상업은행의 저원가성 예금 기반이 무너집니다. 대출 재원이 줄어든 은행들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중소기업 자금 경색과 가계 부채 부담 증가로 이어집니다. 실물 경제에 타격이 가해지는 경로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통화 정책의 전달 경로가 끊어진다는 점입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정해 시중 유동성을 통제합니다. 그런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커질수록, 각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정책으로 시장 금리에 영향을 미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이 상황을 가장 날카롭게 인식하는 곳이 유럽연합(EU)입니다. 제가 유럽중앙은행(ECB) 관련 자료를 살펴봤을 때, 그들의 위기의식은 단순한 경쟁 심리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9% 이상은 달러 연동 코인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유럽 시민과 기업들이 유로화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일상 결제에 쓰게 되면, 유럽은 통화적으로 미국에 종속되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은 경제적 주권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럽이 CBDC를 추진하는 이유가 기술 혁신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방어 전략에 가깝습니다. EU가 미카(MiCA) 규정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엄격한 준비 자산 요건과 익명성 제한을 부과하고, 자금세탁방지(AML)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역외(Offshore) 지역으로 도망쳐 규제를 회피하는 발행사들을 국제 공조로 틀어막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금융의 역사를 되짚어볼수록 하나의 냉정한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시장의 압도적인 유동성과 거대한 국가 패권이 결합한 흐름을 규제만으로 막아낸 사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후 미국이 석유 결제를 달러로 고정해 달러 패권을 수십 년 연장했듯이, 지금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신금융망 위에서 그 역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왜 보유자에게 이자를 안 주나요?
A. 법적으로 발행사는 코인 보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습니다. 이것이 사적 시이오리지 구조의 핵심입니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국채 이자를 벌지만 그 이익을 나눌 필요가 없으니, 발행 규모가 커질수록 이익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구조는 은행 예금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은행은 최소한 예금 이자를 지급합니다.
Q. 미국이 CBDC는 막으면서 스테이블코인은 허용하는 이유가 뭔가요?
A.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CBDC는 상업은행 예금을 흡수해 기존 금융 체계를 흔들고 '금융 감시' 논란을 일으킵니다. 반면 민간 스테이블코인은 정부가 직접 관리 비용이나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도, 민간 발행사가 고객 돈으로 미 국채를 사게 만들어 달러 패권 확장과 국채 소화라는 실리를 미국 정부에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Q. 내로우뱅크(Narrow Bank) 구조가 왜 위험한 건가요?
A. 내로우뱅크는 예금만 받고 대출은 하지 않아 겉으로는 안전해 보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자금이 상업은행 예금에서 스테이블코인 지갑으로 대거 이동하면, 상업은행의 대출 재원이 줄어들어 기업과 가계에 대한 신용 공급이 위축됩니다. 또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로 시중 유동성을 통제하는 통화 정책의 전달 경로 자체가 약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Q. EU의 MiCA 규정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막을 수 있나요?
A. MiCA(미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준비 자산 요건, 익명성 제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등을 부과하는 EU의 암호자산 규제 체계입니다. 규제 회피를 위해 역외로 빠져나가는 발행사들을 국제 공조로 제어하는 데 일정 효과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 사용자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는 관성, 그리고 미국의 강력한 제도화 의지가 결합된 흐름을 규제만으로 역전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결론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암호화폐 편의 수단으로 보던 시각은, 수익 구조와 거시경제적 파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파고들며 확인한 것은 이것입니다. 미국의 지정학적 의지, 폭증하는 미 국채를 소화해 줄 큰손의 필요성, 그리고 월가 자본의 이해관계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 하나의 접점에서 만났습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패권의 디지털 혈관'입니다. 기술이나 단기 시세보다 이 금융 인프라의 판도를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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